거기 커피가 있었다

잼있는 커피 티읕.2

kahwa 0 4,723
 
  “자, 그럼 이번에는 씨앗을 파는 청년을 모시겠습니다. 빨간색 해바라기 같은 희한한 꽃씨, 희귀한 씨앗을 파는 청년입니다!”
  하늘색 셔츠를 입은 청년이 흑무가 서 있는 곳으로 나갔다. 그는 손에 시집을 한 권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창창이라고 합니다. 저는 실연을 당한 뒤에 구례로 흘러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가 삼년 남짓 됐습니다. 저는 오늘 박남준 시인의 시를 낭송하려고 합니다. 박남준 시인은 구례에 사는 사람들이 포장마차에 가거나 맥주집에 가면 마주치는 분입니다. 악양산방에서 고품격으로 사시는 박남준 시인은 이 동네 처녀 총각들한테 싱글의 왕으로 불립니다. 몇 년 전에 표지가 노란 시집을 내셔서 제가 늘 손에 들고 다니는데요, 시집 제목은『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입니다. 이 시집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 들려드릴게요.”
 
 


  흑무와 하루가 기타와 드럼으로 멋진 배경음악을 만들어냈다.
  목청을 한껏 가다듬은 창창이 시를 낭송했다.
 
 
 
 

  나도야 물들어 간다
 
                         박남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대의 곤한 날개 여기 잠시 쉬어요
흔들렸으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은 풀잎이 속삭였다
어쩌면 고추잠자리는 그 한마디에
온통 몸이 붉게 달아올랐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쉬지 않고 닮아가는 것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나지 않는 것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것
그리하여 가득 채웠으나 고집하지 않고
저를 고요히 비워내는 것
아낌없는 것
당신을 향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자라 허공을 당겨 나아가듯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 간다는 것
맨 처음 씨앗의 그 간절한 첫 마음처럼  
 
 


  창창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그가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상상했으리라. 그 고운 빛깔에 마음을 물들였으리라!
 
 


  청중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나도 무대로 나갔다. 자작시〈신비하다〉를 낭송했다.  
  “자, 오늘 마련한 깜짝 미나리콜렉숀을 이제 끝내겠습니다. 아, 광고가 하나 있습니다. 이번 달부터 찾아가는 점포공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장소는 목공소입니다. 나중에 날짜 공지할 테니 함께 하실 분 오셔도 됩니다.” 
  흑무의 말이 끝나자 하루가 일어섰다. 자신도 무대에 서겠다며.
  “자, 이분은 김광석 노래만 30년 연구하신 분입니다. 노래를 청해 듣겠습니다.”
  흑무가 반주를 준비했다.
 
 


  “김광석 노래 부르려니 부끄러워요. 언제쯤 이 부끄러움이 사라질까요? 나른한 오후, 부르겠습니다.”
  하루는 낯선 곡조의 노래를 불렀다. 그는 정말 잘 알려지지 않은 김광석 노래까지 꿰뚫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수십 년 동안 탐구하는 열정이 내재되어 있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섬진강의 잔물결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잼있는 커피 티읕》의 재미있는 모양의 가격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했다. 반달곰, 붕어빵, 고양이, 코끼리, 공룡, 커피포트, 핸드밀…….
 
 


  폭죽놀이처럼 환상적인 미나리콜렉션이 끝났을 때 내가 흑무에게 물었다.
  “미나리콜렉숀 할 때 구경 오는 사람들이 진짜 미나리 들고 오나요?”
  흑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사람은 없어요. 제가 텔레비전도 안 보고……. 별다른 취미가 없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모모도 그렇고 따로따로 직장인밴드를 오래 해서 악기는 잘 다뤄요. 모모는 기타랑 건반을 잘 다루고, 저는 기타랑 드럼을 잘 다루구요. 그런데 둘만 공연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원하는 분한테 악기 무료로 가르쳐 주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함께 공연을 해요. 여기서 하는 공연은 오픈마이크 개념인데 좀 재미있게 하기 위해 미나리콜렉숀이라 이름 붙였어요. 그 시간에는 환각을 느낄 만큼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거라고나 할까요?”
  “일종의 소문화운동이네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분이 얼마나 되나요?”
  “현재 연습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 악기 연주하시는 분만 45명 정도에요. 그 중에 35명은 고정멤버에요. 거의 직장인이죠.”
  “나중에라도 서울 답답하시면 피난 오세요! 미나리콜렉숀에 오세요!”
 
 


  마치 종달새처럼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며 커피를 만들던 모모가 거들었다.
  기꺼이 그러겠다는 대답을 해 놓고 나니 문득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어떤 장기로 사람들과 웃음을 나눠야할지 행복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잼있는 커피 티읕》에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운일까? 모모의 표현처럼 함께 ‘쿵짝쿵짝하면서 웃을 수 있는’ 축제의 시간을 고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계속)
 
글      :   양선희(시인)
사진   :   원종경(비디오그라퍼)
 
 

잼있는 커피 티읕   :   전라북도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317-9번지  /   061-783-0213


양선희(시인)
사진 원종경(비디오그라퍼)
주소 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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